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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식탁 스키야키

[이용재의 즐거운 식탁 ①]

기자명 이용재 음식평론가

 

©Aaron Thomas
©Aaron Thomas

 
 필자는 혼자만의 식탁을 꾸리는 이들에게 집밥이라 일컫는 '자가 조리'의 당위를 설득하려 들지는 않는다.

 ‘이처럼 좋은 집밥 너는 왜 안해 먹어 츄라이 츄라이’ 같은 만트라로 접근해봐야 반감만 살 뿐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뒷주머니에 꿍쳐두는 생존 요령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편이 더 낫다.

 외식의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 모든 음식이 연료로 전락했을 때, 쌈장이 담겨 잘 씻기지 않는 일회용 그릇과 개수대에서 씨름하는데 진력이 날 때, 그럴 때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는 생존 요령으로서 자가 조리, 그런 요령으로 꾸리는 혼자의 식탁 말이다.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자
생각을 하지 말고 생활을 하자”

 
   -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바른 생활> 중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에 잠을 깼다. 어느 샌가 일과를 마치고 잠깐 잠드는 습관이 붙었다.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고 남은 일상을 위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잠이다. 잠기운이 걷힌 자리를 허기가 무섭게 파고 든다.

 뭘 먹지? 냉장고를 열어보니 암담하다. 식재료는 있지만 한데 아울러 음식으로 만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만큼 배가 고프다. 평소라면 먹고 남긴 반찬이나 삶아 놓은 파스타 등, 식사 구성을 위한 최소한의 실마리가 남겨져 있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 것도 없다. 배가 고픈데 여력도 실마리도 없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 시점에서 배달 앱을 켤 가능성이 아주 높다.

 배달앱은 좋은 선택이지만 한계 또한 분명하다. 코로나 시국 이후 본격적으로 써 보았지만 어느 시점에서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음식이 배달되는 동안 맛의 켜가 적어도 하나는 날아간다.

 이를테면 온도만 낮아져도 음식의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물이 최선이기 어렵다. 일회용 용기도 부담이 크다. 특히 한식에는 자질구레한 용기가 정말 많이 딸려 온다. 이를 씻어서 재활용하는 번거로움에 인내심이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말았다.

 또한 배달 음식도 언젠가는 물리고 만다. 다른 맛을 찾아 다양하게 시켜 먹지만, 파는 음식이 집합적으로 내는 맛의 표정이 있다. 한국의 식문화에서는 매운맛과 단맛이 표정을 주도한다. 이런 표정을 계속 접하게 되면 어느 순간 물려버려 음식은 연료(fuel)로 전락해 버린다. 먹는 즐거움이 거세된, 배를 채우고 영양소를 공급하기 위한 음식 말이다.

 해먹을 여력은 없고 사먹자니 그 맛이 그 맛이라 어떤 것도 섣불리 선택하지 못하는 가운데 허기는 계속 덩치를 불린다. 그리고 그 위에 낙타의 등을 부러트린 지푸라기와 같은 현실의 편린이 쌓인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내가 차리는 식탁이 오롯이 나만의 것이라는 현실이다.

 혼자. 존재로서는 하나인데 표현하는 단어는 두 음절이라 그럴까? 우리는 혼자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어쩐지 버려진 것 같고 고독과 서글픔, 침울함이 무시로 엄습할 것 같은 상황이라 여긴다. 그러나 단지 혼자이기 때문에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습관적이다. 혼자임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너무 의식하다 보면 어떤 선택이든 내려봐야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버릴 수 있다. 그런 논리가 식탁과 맞물리면?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식탁 꾸리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허기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영원한 패배자이다. 육체는 물론 정신을 위해서라도 먹어줘야 한다.

 혼자만의 식탁 꾸리기는 왜 이다지도 내키지 않는 걸까? 크게 두 갈래의 이유를 꼽을 수 있는데, 둘 다 육체적이지 않다. 첫 번째는 일종의 침투사고 탓이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떠오르는 생각을 심리학에서는 침투사고라 규정한다. 식사의 맥락에서는 ‘나는 어쩌다가 혼자 밥을 먹게 되었을까?’이다. 혼자라는 상태가 문제이며 뭔가 잘못되어 벌어진 상황이며 식사는 징벌이라 여긴다. 이런 생각은 허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의욕을 꺾고, 사람의 육체는 물론 정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일조한다.

 두 번째는 ‘집밥’ 미화의 문화가 조장하는 일종의 반감이다. 집밥 예찬론자들이 있다. 그들은 집밥은 아름다우며 건강에 좋고 심지어 사먹는 것에 비해 비용도 적게 든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래서 눈으로나 맛있을 식사의 사진을 SNS에 올리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혼자라도 제대로 챙겨 먹는 아름다운 나’를 홍보한다.

 그런 가운데는 안타까워하다 못해 화를 내는 이들도 있다.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 건데 대체 왜 하지 않느냐고, 이걸 못해서 몸에 해로운 배달 음식을 계속 먹으며 돈을 물 쓰듯 쓰는 것이냐고.
 

©일본 드라마 '이상적인 스키야키' 중 한 장면
©일본 드라마 '이상적인 스키야키' 중 한 장면

 20년도 넘게 혼자만의 식탁을 꾸리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 육체적 행위인 조리보다 정신적 행위인 식사의 총괄 계획이 더 어렵고, 우리는 과업 외의 일에 정신 및 육체의 자원을 할애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더군다나 조리와 식사는 식생활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장보기부터 식재료의 재고 관리, 설거지까지의 총체적인 과정을 감안하면 집밥이 사실 더 번거로우며, 비용도 많이 들 수 있다.

 집밥을, 특히 혼자일 때 선택하지 않는 건 지극히 이성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온갖 아름다운 라이프스타일의 이미지들이 고민하는 이들의 기를 죽인다. 저렇게 못하느니 하지 않는 게 낫지.

 나는 특히 혼자만의 식탁을 꾸리는 이들에게 집밥이라 일컫는 자가 조리의 당위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이처럼 좋은 집밥 너는 왜 안 해 먹어 츄라이 츄라이’ 같은 만트라로 접근해봐야 반감이나 살 뿐이다. 그보다는 뒷주머니에 꿍쳐두는 생존 요령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편이 더 낫다.

 외식의 모든 가능성을 소진했을 때, 모든 음식이 연료로 전락했을 때, 쌈장이 담겨 잘 씻기지 않는 일회용 그릇과 개수대에서 씨름하는데 진력이 날 때, 그럴 때의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는 생존 요령으로서 자가 조리, 그런 요령으로 꾸리는 혼자의 식탁 말이다.

 잠시 눈을 붙였다 떼니 허기가 몰려온다. 식사를 계획하고 조리를 할 여력이 없지만 배달 앱에 의존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고민과 허기를 한방에 해결해줄 만한 음식이 있을까? 계절까지 감안할 때, 나는 스키야키에 의존한다.

 스키야키는 많은 미덕을 품은 음식이다. 일단 빨리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멸치나 다시마, 가츠오부시 등으로 육수를 직접 낼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쯔유부터 ‘연두(채소 농축액으로 맛을 낸 연한 간장)’, 간장이나 고형 닭 육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빠른 조리 대비 큰 만족을 선사한다.

 덕분에 물을 냄비에 담아 끓이기 시작해 15분이면 먹을 수 있다. 한편 국물은 사람에게 금방 온기를 불어 넣어주니 온갖 피로함에 시달리는 혼자의 몸은 물론 마음마저 달래준다.

 또한 스키야키는 채소를 많이 먹도록 도와준다. 참으로 자질구레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파는 음식에서 채소의 균형이 안 잡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며, 한식의 식단은 김치나 장아찌 등, 기본적으로 익히지 않았으며 맛이 강한 채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가운데 채소를 익혀 먹는 스키야키로 균형을 꾀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채식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원래 채소 바탕의 음식이므로 국물 맛내기의 원천으로 ‘연두’나 간장을 쓴다면 두부, 버섯 등의 훌륭한 식물성 단백질원과 함께 완전채식 음식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키야키는 소위 ‘원 팟 밀(one pot meal)’이다.  말 그대로 냄비 하나로 조리를 완결시킬 수 있으니 먹고 치우기도 편하다. 그리하여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가사를 빌려 쓰자면 “생각을 하지 말고 밥을 잘 먹은 뒤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스키야키가 도와줄 수 있다.

 조리에 익숙하지 않다면 느낄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레시피에서 계량을 덜어냈다. 국물의 간만 입맛대로 맞춘다면 어떻게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될 것이다.
 

©savorjapan
©savorjapan

스키야키

재료

– 국물의 바탕 (쯔유, 연두, 간장, 고형 닭육수 등)

–  알배추

– 각종 버섯 (만가닥, 흑타리 등 *1)

– 우삼겹 (또는 대패 삼겹살 *2)

– 두부

– 각종 탄수화물 (밥, 우동면 등)

준비 및 조리 시간 : 15분

- 재료를 손질한다. 배가 고프다면 배추는 빨리 익는 윗동만 썰어 물에 씻는다. 버섯도 뿌리를 잘라버리고 물로 가볍게 헹구고, 두부도 썬다.

- 1의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버섯과 배추를 먼저 넣는다. 배추 이파리가 투명해질 정도로 익으면 두부와 우삼겹을 더한다.

- 한소끔 끓은 뒤 간을 본다. 싱거우면 쯔유 등 국물의 바탕을 더해 맞춘다.

- 불에서 내려 한김 식힌 뒤 건더기를 건져 먹고, 남은 국물에 탄수화물을 끓여 식사를 마무리한다. 이때 남은 재료를 추가해 끓여도 좋다.

*1: 표고는 가격이 높고, 팽이는 질기므로 웬만하면 피한다.
*2.: 다만 채식 식사를 준비할 경우 고기 대신 표고를 쓰면 맛과 영양 모두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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